중도일보 -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장애인… 보호 체계 마련 시급 (joongdo.co.kr)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장애인… 보호 체계 마련 시급

40년간 한글 배우지 못하거나 성피해 센터 없어 타지역으로 가기도
여성장애인 48% 비율로 절반 이상이지만 이들 위한 지원체계 없어

대전여성장애인연대에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지역의 여성장애인들이 참여해 그림 교육을 받고 있다.

#1. 대전에 거주하는 한 중증 장애인 양 모(48)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지역의 한 '여성장애인 교육 센터'에서 40년 만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거동이 불가능해 누워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침대가 들어갈 수 있는 교실이 그동안엔 없었기 때문이다. 수업을 듣기 위해선 그의 전용 칠판이 필요했는데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교육 기관도 없었다. 결국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하고 TV에 의존한 채 한글을 깨쳐야 했다.

#2. "대전에서는 저를 받아 줄 곳이 없다고 해서 다른 지역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지난해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었던 40대 여성 김 모 씨는 가족을 피해 집을 나와야 했지만 그를 받아 줄 수 있는 기관이 없어 다시 원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지역에서도 여성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임시 보호 센터가 있으나 이미 포화상태였기 때문에 김 씨는 부산에 있는 센터로 가야만 했다. 지체장애인이었던 김 씨는 타지역의 생활을 적응하지 못해 결국 다시 집으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다가온 가운데 대전 지역의 여성 장애인들이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장애인들은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 차별을 받는 현실이지만 이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기본적인 지원 체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18일 복지계에 따르면 현재 대전의 여성장애인의 수는 3만 4560명으로 전체 등록된 장애인의 수인 7만 2000명 중 48%를 차지한다. 지역 장애인의 절반가량이 여성 장애인이지만 이들을 위한 보호 수단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여성장애인의 경우 76%가 초등학교 졸업 이하 무학력에 해당돼 남성 장애인에 비해 교육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실정이다. 과거 남성의 경우 가정을 형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고등학교 교육과정까지 마칠 수 있었으나 이와 달리 여성장애인의 경우 학교 수업조차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현재 대전여성장애인연대가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외하곤 여성 장애인들의 교육권을 보장해 주는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폭력에 노출돼 있지만 이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방어막도 매우 부족하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임시 보호해 주는 센터는 1곳에 불과해 타지역으로 옮겨가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피해 여성들은 가해자가 있는 거주시설로 되돌아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성 장애인들의 안전한 삶 보장을 위해 그들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법적 울타리로서 '여성장애인 지원 조례' 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유승화 대전여성장애인연대 대표는 "대전에 여성장애인 출산·육아 지원 조례가 존재하나 여성장애인 중 임신, 출산을 한 10%가량만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라며 "이렇듯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지원하려 해도 법적 근거가 없어 도움을 줄 수 없다. 이들이 모든 권리 영역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조례 제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십년간 한글을 배우지 못했던 한 여성장애인이 한글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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